diary

계획

lettersfromh 2016. 8. 4. 16:08

계획에 딱 들어맞게 일어지는 일들은 없지만 분명 엇비슷하게 나아가고 있다.


내게 유럽에서 주어진 시간은 네 달 남짓일 것이다. 수업은 11월 말에서 12월 초에 끝난다. 날이 좋을 때, 이미 동유럽을 가기로 계획을 세워 두었다. 내가 사는 도시에는 공항이 있다. 난 비행기를 이용해서 프라하부터 오스트리아를 거쳐 부다페스트까지 갈 것이다. 동유럽은 내게 있어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 그리고 이것만은 부디 계획이 어그러지지 않기를 부디, 바랄 뿐이다.


처음으로 혼자서 하는 제법 긴 여행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수업을 빠진다는 각오로 아마 일주일 간은 비워두고 싶다. 내겐 수업보다 여행이 더 중요했다. 이번 만큼은. 날이 좋을 때,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바람이 차가워지고 어딘가 황량해 보이는 풍경이 아닐 때, 할슈타트를 가고 싶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이 사랑스러운 그런 계절에 훌쩍 떠나고 싶었다. 제발 내가 머뭇거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동유럽 여행을 '나를 깨는 여행'으로 정의했다. 스무 살이 된 이후로 줄곧 하고 싶었던 스카이다이빙을 체코에서 할 계획이다. 혼자서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들으며 이따금씩 일기를 쓰겠지. 엽서를 사고 나에게 혹은 보내고 싶은 친구들에게 엽서를 두서없이 적어내릴지도 모른다. 시작부터 끝까지 두려움으로 점철된 여행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시도해 보고 싶은 건... 


결국 혼자임에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서 확인받고 싶었다. 혹은 나를 또 깨는 무언가를 하고 싶기도 했다. 그저 평범하고 안전하기만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이제 재미가 없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요즘 내게 일어난 일련의 평범의 범주에서 벗어난 사건들은 결국 상황이 아니라 내가 바뀐 것 같기도 하고.


사이사이엔 기차를 타고 프랑스 이곳 저곳을 누빌 것이다. '파리'말고도 아름답고 고즈넉하며 적당히 붐비는 다른 도시들을. 한국에서 20년이 조금 넘는 이곳에서의 시간보다 그곳에서 남겨온 기억들이 더 많기를 바라면서.


12월이 되면 나는 그곳을 떠날 것이다. 프랑스는 3개월 간 부지런히 다녀보기로 하고 남은 한 달 정도는 다른 곳을 가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가고 싶은 곳은 많지만 그리 멀지 않으면서 치안이 괜찮은 곳에서 혼자 머물기로 했다. 지금 추린 정도는 스위스, 영국 쪽이다. 아마 짧으면 15일 길면 20일이란 시간을 계속 서유럽 쪽을 떠돌 것 같다. 다행이도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스위스와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모두 운행한다. 둘 다 가게 된다면 아마 나는 스위스 쪽은 먼저 택할 것 같다. 둘 다 물가가 비싼 나라라 한인 민박이나 호스텔 쪽을 최대한 이용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