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간의 짧은 유럽 생활을 마치고,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실 런던에 있을 때, 두번 이곳에다가 일기 쓰기를 시도했지만 두 번 다 날아갔다 하하..
지금은 오전 6시 44분, 나는 또 시차 적응에 실패했고 그래서 유럽에서 돌아왔던 그 여름처럼 이렇게 밤에 컴퓨터를 켰다. 그동안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을 정리하려고.
프랑스에 있을 때, 혹은 유럽 여행을 하면서 나는 정말 많은 생각들을 했다. 그럼에도 핸드폰에 깔려있던 일기 앱에 내 생각들을 정리하지 못한 이유는, 처음이었다. 이렇게 너무나 복잡하고 심란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적은. 특히 내가 살던 동네를 떠날 때와 한국에 오기 전,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찍어놓은 사진과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꽤 많았던 것 같은데 막상 하려니까 또 생각이 안 난다. 요즘은 계속 이런 식이었다. 예전에는 인터넷 창만 켜놓으면 줄줄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써 내려갔던 것 같은데, 유럽에서는 그게 힘들었다.
그동안 번번이 실패했던, 런던에서의 사진부터 우선 올려본다.
12월 4일부터, 18일까지 엄마와의 유럽여행을 마치고 공항에서 엄마랑 헤어지던 날, 사실은 많이 울었다. 곧 2주도 안되어서 한국에서 볼 텐데 그냥 계속 눈물이 났다. 이때의 나는 정말 많이 지쳐있었던 것 같다. 더이상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한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고 뭐랄까, 억지로 시간을 때우는 느낌이었다. 소중한 시간인 걸 알면서도 당시엔 그랬다. 그래서 성실하게 여행에 임하지 못했다. 엄마를 잘 구경시켜줘야 된다는 하나의 미션을 수행하는 느낌이었고 그 과정에서 엄마에게 짜증도 내고 실언을 하기도 했다. 밤에 엄마의 잠든 얼굴을 보면서 미안함이 밀려왔고, 내일은 꼭 예쁜 말만 해야지, 다정하게만 굴어야지 다짐하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그게, 엄마랑 헤어지던 날, 몰려왔다.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는 엄마를 두고 계속 성질을 부렸던 내가. 떠나는 날까지 짜증을 냈던 내가 너무 후회스러워서.
그렇게 탄, 런던행 비행기였다.
보딩을 기다리는 동안, 엄마와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비행기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타고 창가를 보면서. 내 생각보다 겁이 많고 유약했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처음으로 혼자 온 여행지였다. 파리도, 동유럽도, 보르도도, 스페인도, 포르투칼도 모두 누군가와 함께했다. 나는 처음으로 나 혼자서 해야 하는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오기 전부터 늘 말했던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것>
이제는 공항에서 혼자 시내에 오는 것도, 지하철을 타는 것도 너무 익숙해서 예약한 한인민박의 픽업 장소까지는 한번도 헤매지 않고 단번에 찾아갔다. 오랜만에 누워보는 삐걱거리는 이층침대에서 나는 앞으로 런던에서의 5일, 파리에서의 5일이 정말 지친다고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사실 저건, 둘째 날 사진이고 이건 첫째 날 혼자 카페에서 먹은 걸 찍은 사진이다. 이때는 단순히 이런 걸 먹는다고 카톡으로 보낼 목적으로 찍어서 정말 성의없이 찍었다. 민박에서 챙겨주는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를 먹고 나면 한동안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서 런던에서는 점심으로 보통 빵과 커피로 끼니를 때웠다. 엄마랑 파리에서 자주 갔었던 pret a manger 영국에서는 정말 한 골목 지나면 또있고, 또 있고 또 있었다. 우리나라 파리바게트 수준.
런던에서는 체력적으로 정말 피곤해서 오래토록 자고 싶었지만 한인민박의 특성상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오전에 나와서 민박 사장님이 짜주시는 루트대로 계속 걸었다. 하루에 17,18km를 걸으며 런던을 계속 계속 구경했다. 이때의 나는 정말 지쳐서 쇼핑도 흥미가 없었고, 그냥 파리와는 전혀 다른 영국 특유의 고딕 양식의 건축물들을 계속 보았던 것 같다.
첫날은 특히나 몸이 너무 좋지 않아서 네셔널 갤러리에서는 미열이 있었고 두통이 몰려왔다. 양해를 구하고 민박집에서 쉬어야 되나 생각하던 때부터 차차 괜찮아진 것 같다. 이때는 괜찮아진 후 따듯한 음료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들어간 곳.
혼자 하는 여행의 불편한 점은 둘이서 여행할 때처럼 한명이 자리를 찾고 한명이 주문을 할 수 없다는 것이였다. 나는 괜히 혼자 주문했다가 자리가 없어서 뻘쭘하게 서 있어야 하는 상황이 싫어 계속 사람이 적은 곳을 골라다녔다. 여기는 사람이 꽤 많았었는데 운 좋게 창가자리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한국에 있는 친구와 카톡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건 셋째 날 테이트모던 6층카페.
혼자 다니는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내가 있고 싶은 장소에서 오래토록 있을 수 있었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었고 걷고 싶을 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또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들으며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굳이 배고프지 않으면 끼니를 걸러도 되고. 테이트모던 카페는 너무 전망이 예쁘고 분위기가 좋아서 거의 2시간을 앉아있었던 것 같다. 노래를 들으며. 그때 들은 노래는 Mogwai의 take me somewhere.
사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다.
구글맵에 의존하면서, 혼자 런던을 걸어 다니면서, 밤에 썼던 일기는 그래도 결국 사람들의 틈바구니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혼자 여행을 했지만 저녁마다 저녁을 먹으며 나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했고, 혼자 길을 걸으면서도 친구들과, 가족들과 카톡을 했다. 결국 완벽하게 혼자일 수는 없었다. 단지, 누군가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딱 그 정도의 사람이 되야겠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사진은 캠든 마켓의 한 카페. 시원한 게 먹고 싶어서, 아이스티를 먹으려고 들어갔던 카페인데 얼음이 없어서 아메리카노를 마셨던^_^..
이때 즈음 혼자 여행하면서 마신 커피들을 찍어놔야겠다고 생각한 때라 부랴부랴 찍었다.
런던을 올 때쯤, 그런 생각이 들었다. 2년 반 전, 내게 새로운 감정들을 불러주었던 첫 번째 장소 영국.
본머스에서 런던 시내에 진입했을 때 보이던, 한국과는 전혀 다른 멋진 건물과 풍경들.
그곳에 내가 다시 왔다고.
그리고 돌아오던 날, 나는 부랴부랴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 갔다. 벌써 세 번째, 이번엔 파리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러.
*
외국에 살면서 가장 걱정됐던 점은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한달음에 달려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곳에서 나는 철저한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아픈 것 하나도 걱정이 됐다. 그런 생활에 지쳐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꿈꿔오던 유럽이었기 때문에 항상 떠날 날에는 가슴 한구석이 꾸욱 조여오는 그런 기분을 느꼈야 했다. 아마도 이제가면 또 언제오나, 라는 생각과 내 22살이 이렇게 흘러갔다는 생각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또 한 번 나는 느낀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것들, 모든 경험해봐야 한다는 것을. 3개월간 가족과 떨어져서 지냈던 그 시간들도, 엄마랑 여행했던 그 시간들도, 혼자 여행했던 그 시간들도, 마지막 파리에서의 나날들도 모두 필요했던 시간이었다는 걸. 조만간 모두 포스팅으로 담아내야지.
*
지난 사 개월 동안 나는 참 많은 곳을 옮겨 다녔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이렇게 많은 곳을 옮겨다니며 잔적이 없었다. 내가 살던 동네부터 시작해서 파리, 프라하, 오스트리아, 부다페스트, 보르도,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산티아고, 포르투, 리스본, 그리고 다시 파리, 런던, 그리고 또다시 파리까지. 수많은 이동이 있었고 그 속에서 나는 너무나도 지쳤었다.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고 비행기나 기차 혹은 버스를 타는 것도, 이동하던 날 혹여 부다페스트처럼 비행기를 놓칠까봐 걱정하는 일도, 한국에 오니 지난 4개월의 시간이 또 신기루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내 방에서 오래토록 잘 수 있다는 것, 아무데도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행복하다. 오늘은 2016년의 마지막 날, 이제 곧 새해다. 그렇게, 나는 4개월 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